[6년간 시달리던 아들, 결국 정신병원에… 어머니 통한의 인터뷰]
"가해자 처벌에만 급급해 정작 아이 신경은 못 써…
아이 구할 기회 많았지만 학교·사회·국가 모두 외면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 커피숍에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는 중 2 때부터 6년간 집단 괴롭힘을 당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로 스물두살 청년 때 정신병동에 갇힌 김모(23)씨〈본지 13일자 A1·2면 참조〉의 어머니(48)다. "아들에게 빵 사온다고 둘러대고 몰래 나왔어요." 긴장된 표정에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들 김씨는 지난해부터 시설관리공단에서 공익근무를 하다 대인관계 스트레스로 정신 분열 증세가 심해져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키 180㎝의 건장한 체격인 김씨는 하루 종일 멍하니 있거나 어머니만 따라다닌다. 지난 8년은 어머니에게도 참기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에게도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 증세가 찾아왔다. 하지만 아들 걱정하느라 자신의 치료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학교는 아들을 철저히 외면"
김씨의 어머니는 "우리 가족처럼 학교 폭력으로 고통을 겪는 피해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가 제발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내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을 기회가 수십번 있었지만, 교장과 교사, 학교, 국가 모두 우리 아픔을 외면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을 받아주지 않은 우리 사회를 원망하는 듯했다.
학창시절 6년간 왕따와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김모(23)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고교 졸업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병자”라는 놀림을 받으며 어렵게 따낸 고교 졸업장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았다고 했다.
김씨 부모는 아들이 서울 I중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 중학교 2곳, 고등학교 3곳을 옮겨다녔다. 아버지는 "아픈 우리 아들을 감싸주고 다독여줄 학교를 찾아서 지방까지 내려갔고, 심지어 외국인 학교까지 알아보고 다녔다"며 "그러나 모든 학교에서 우리 아들이 내성적이라서 왕따를 당한다고만 했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보살펴준 곳은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왕따 괴롭힘이 무서워 학창시절 수학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대신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학교에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매일 매일 울었다"며 "그렇게 아들이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땐 온 가족이 너무 기뻐서 또 울었다"고 했다.
◇"차라리 아들 학교 그만두게 할걸"
그때만 해도 김씨 부모는 아들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다. 아들에게 "너 괴롭힌 애들 다 처벌받았어. 이제 괜찮지?"하고 물으면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다 해결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김씨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고, 그게 어른이 돼서야 터져나왔다.
김씨는 최근 부모에게 "불을 지르겠다" "같이 죽자"고 소리를 지르고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김씨 아버지(48)는 "그땐 정규 교육과정은 제대로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 가기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보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씨 부모는 자기들이 오히려 자식을 망치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여러번 했다고 했다. 부모는 아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가해 학생 처벌을 위해 학교와 교육청, 경찰서를 쉴 새 없이 쫓아다녔다.
그러나 그동안 정작 피해자인 아들에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은 가정까지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상처받은 이 땅의 모든 피해 학생과 그 가족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어머니는 계속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