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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괴범에 잃은 딸 곁으로…쓸쓸히 떠난 아빠
조회 : 17,736
2014.03.04 22:46
유괴범에 잃은 딸 곁으로…쓸쓸히 떠난 아빠
 
 
7년전 살해된 혜진이 그리며
고통의 나날, 술로 억눌러
작년 추모제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4일 새벽 심장마비로 떠나
유괴 매년 60~120명…비극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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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엔 작은 섬이 생겼다. 한없는 그리움은 드넓은 바다가 됐다. 딸을 잃은 아빠는 섬 속에 들어앉아 홀로 외로웠다. 2007년 12월25일 성탄절 선물을 사러 나간 뒤 유괴돼 숨진 혜진(당시 10살)이의 아빠 이창근(52)씨는 7년의 고통스런 삶을 견디다 4일 새벽 1시께 딸이 뛰놀고 있을 하늘로 떠났다. 심장마비였다.

이씨는 딸 생각을 놓은 적이 없었다. 혜진이는 아빠를 애달프게 한 10살로 남아 있었다. 실종 82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들리지 않는 비명은 7년의 밤 동안 아빠의 가슴을 도려냈다.

경기도 의왕시 안양시립 청계공원묘지에 딸을 묻고 돌아온 날, 아빠의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딸을 찾아 떠돌며 인쇄공장도 그만둔 뒤였다. 친구를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안부를 묻는 일은 부질없어 보였고, 시답잖은 농담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끼리 대화도 줄었다. 이씨는 스스로를 섬에 가뒀다. 세상을 떠난 혜진이의 모습과 딸을 빼앗아간 ‘그놈’이 떠오르는 밤이면 술을 마셨다. 산 입에 거미줄은 칠 수 없어 공공근로사업에 나갔고 폐지를 모아 팔았다. 혜진이 엄마는 2010년부터 식당일도 했다. 죽지 못해 한 일들이었다.

딸을 잃고 세상이 무서웠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아들은 해병대에 복무 중이었다. 그는 술잔을 들고 펑펑 울었다. “아들마저 잃는 줄 알았어…. 혜진이가 살아 있을 때 지 오빠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하늘나라에서 지켜줬나 보다.” 그가 친구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이씨는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에는 열심히 참석했다.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승에서는 마지막으로 딸을 만났다. 함께 희생된 혜진이와 예슬(당시 8살)이를 기리는 ‘혜진·예슬양 6주기 추모제’에서였다. 술로 아픔을 눅여온 그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내내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눈물을 멈추지 못한 그는 석달도 안 돼 숨을 거뒀다. 이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양 메트로병원 장례식장에는 혜진이 엄마와 오빠 등 가족 10여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이씨는 혜진이가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5일 안장될 예정이다.

혜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예슬이 가족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시화호 물을 다 퍼내서라도 딸을 찾아 달라”고 울먹이던 예슬이 엄마와 “이제 와서 정부가 나선다고 딸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던 아빠는 장례식 뒤 실종아동 부모 모임과도 연락을 끊었다. 예슬이 언니의 이름도 바꿨다고 한다. 예슬이 가족은 딸 이름조차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다며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아동 유괴의 비극은 여전하다. 혜진·예슬이 사건 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아동 안전 대책을 쏟아놨다. 당시 정부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를 늘리고 ‘아동 안전 지킴이집’을 마련했다.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도 시행했다. 하지만 경찰청 자료를 보면 2010년 2만6984명, 2011년 2만8099명, 2012년 2만7259명의 아이들이 실종됐다. 이 가운데 매년 60~120명은 유괴 피해자다.

‘전국 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의 나주봉 회장은 “사건이 일어날 때만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평소에 아동 유괴·실종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유괴·실종 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고 예방 교육은 보건복지부가 챙기고 있는데, 별도의 통합기구 마련이나 민관 협력 방안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아동 실종 및 유괴범죄 실태와 대책’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1984년 실종아동조력법을 만들었다.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전국 실종·착취아동 방지센터’(NCMEC)도 설립했다. 캐나다도 비영리 단체인 ‘국가실종아동서비스’(NMCS)를 만들어 경찰의 실종아동 찾기 전담 부서와 협업한다.

이날 이씨의 빈소에 송길용(61)씨가 찾아왔다. 그의 딸은 17살이던 1999년 실종됐다. “8년 전 아내가 딸을 찾는 전단지를 끌어안은 채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기에 떠나는 마지막 길을 위로해주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그의 트럭은 딸의 사진과 연락처가 적힌 펼침막과 전단으로 도배돼 있었다.

박승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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