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에서 피고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보장하는 권리는 무려 23개에 달합니다. 반면 범죄피해자에게 미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불평등한 미국 사법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미국 범죄피해자 인권운동의 대모로 추앙받는 콜린 캠벨(사진)은 “범죄피해자들을 위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미국인들도 그녀의 이름 앞에는 ‘존경스러운(Honorable)’이란 경칭을 붙인다. 그가 미국 범죄피해자 문제의 상징이 된 것은 참혹한 개인사 때문. 1982년 27세이던 캠벨의 외동아들은 고급스포츠카를 노린 사람들에 의해 살해돼 시체까지 유기됐다. 그녀는 아들이 실종된 지 11개월 만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에도 수년 동안 아들을 죽인 범인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가능성에 가슴 졸이며 복잡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비극은 이뿐이 아니었다. 1988년에는 미국 자동차경주 영웅이던 그의 오빠 부부가 전 매니저에 의해 총으로 살해됐다. 미국 특유의 사법제도 탓에 길게 이어진 법리 공방은 거의 20년 만인 2007년에서야 살인범에게 최종 판결을 내렸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이 같은 과거사를 술회했다.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콜린 캠벨은 법정에서조차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범죄피해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됐다. 미국 사회는 그를 범죄피해자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콜린 캠벨은 “아들을 죽인 범인들은 이미 전에도 범죄를 저질렀으나 경미한 범죄는 두 번까지 처벌을 미루고 세 번째부터 엄하게 처벌하는 ‘삼진 아웃제’ 때문에 풀려나와 결국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현재 미국 사법체계는 지나칠 정도로 피고인의 인권만 강조해 정의의 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에서조차 범죄피해자들은 위로받고 분노를 풀 기회를 얻기보다는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좌절을 느낄 때가 많다”며 “법정에서 재판 결과를 지켜보고 검·경 등의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가장 잘 아는 가족으로서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데 판사가 ‘더 들을 게 없다’며 퇴장을 명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범죄를 저지른 ‘사악한’ 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많았지만 범죄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이는 적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끔찍한 경험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범죄피해자 인권 운동에 나선 콜린 캠벨은 이후 캘리포니아 소도시의 시장, 주 정부 사법위원 등을 역임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상·하원은 여러 차례 그녀의 용기를 기리는 훈·포장 등을 수여했다. 콜린 캠벨은 현재 미 헌법에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권리조항을 새로 넣자는 ‘포스(Force)100’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선량하고 근면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범죄로 고통받는 수백만 미국 범죄피해자 가족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보다 적극적이며 확대된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사법체계 강화조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