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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지원 선진국을 가다] (중) 민·관 공조체제의 모범 영국 "피해자는 한가족"… 자원봉사자 수천명 '구제 손길'
조회 : 18,375
2012.07.04 09:16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국 런던 주택가의 한 도로변 화단 철제 펜스에는 이 같은 내용의 문구가 적힌 소형 현수막이 내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 칼에 찔려 사망한 10대 소년을 추모하고 범죄 예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이 게시물은 범죄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경고한다.

◆자원봉사자가 뛴다=
지난달 25일 런던 남서부 외곽 킹스턴 지역의 ‘빅팀 서포트(Victim Support·범죄피해자 지원 센터)’ 지부 사무실. ‘범죄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정신적 도움과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인쇄물은 빅팀 서포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범죄피해자의 ‘친구’나 ‘이웃’이 되는 게 이
단체 소속원들의 일이다. 킹스턴 지부 시니어 코디네이터인 바버라 앨런은 “경찰 만나는 것을 꺼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고 악몽, 대인기피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경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기관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살인, 강간 같은 강력 범죄는 물론이고 집에 도둑이 들거나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도 신고·보험 처리 절차 등의 해결책을 알려준다.

빅팀 서포트 운영의 핵은 범죄피해자와 직접 대화에 나서는 자원봉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킹스턴 지부의 정식 직원은 4명뿐이지만 3배가 넘는 15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영국 전역에 161개 지부를 두고 있는 빅팀 서포트의 전체 직원은 1337명이지만 자원봉사자는 5배에 달하는 6379명이나 된다. 자원봉사자 활용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우리나라 범죄피해자 지원단체와는 대조적이다.

누구나 5일간 기본
교육을 받으면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고, 국적에 관계없이 영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도움의 대상이다.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처리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특별 교육 이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국에는 빅팀 서포트 외에도 ‘SAMM’, ‘회복을 위한 정의 공동체(Restorative Justice Consortium)’ 등 각종 범죄 피해 지원 단체가 있다. 특히 영국 중부 버밍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SAMM의 경우 살인 피해 가족을 전문적으로 돕고 있다. 이 단체에는 4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들 모두가 범죄 피해자다. 이들은 피해자를 ‘가족’이라고 부르며, 피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고통을 이해하고 피해 구제를 돕는다.

템스강변에서 만난 샐리 제임스는 둘째딸이 살해돼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을 때 SAMM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열성적인 자원봉사자가 됐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살인 피해 가족을 만나는 일이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가해자의 보복이 두렵지는 않을까. 제임스는 “우리가 살다 보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가입한 생명보험증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런던 주택가에 칼에 찔려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고 범죄 예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현수막은 범죄 피해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민관 공조로 범죄 피해 지원=
빅팀 서포트가 여타 민간단체와 다른 점은 정부와 밀접한 공조체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현장을 방문해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고 범죄 처리 절차 등을 설명해 놓은 소책자를 전달한다. 그리고 2일 이내에 사건 내용을 빅팀 서포트에 통보한다. 피해자가 원하면 빅팀 서포트는 전화, 편지,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취한다.

정부로부터 정보를 얻고 재정적 지원도 받고 있지만 빅팀 서포트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빅팀 서포트 본부의 전략정책 책임자인 마이크 딕슨은 “정부 예산은 규정에 따라 투명하게 지출되며, 사전에 합의된 조건에 따라 정부와의 문제를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우리의 봉사 의지를 오히려 저해시킬 수 있다”는 그는 특히 “살인의 경우 가족들도 모두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찰과 배타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팀 서포트가 경찰로부터 얻은 모든
개인 정보는 비밀로 취급돼 취재를 위한 피해자 접촉이 불가능했다.

빅팀 서포트는 ‘증인 서비스(Witness Service)’라는 별도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법정에 출두하는 피해자, 목격자, 피해자 가족 등에게 증언 방법을 설명해 주고 정신적 안정을 위해 이들이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돕는다.

경찰은 강력 범죄의 경우 자체적으로 전담 경찰관을 배치해 피해자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어려운 점이 없는지 살피기도 한다. 살인 현장을 유가족이 정리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범죄 피해 현장 정리도 경찰의 몫이다.

국가
기관인 범죄상해보상청(CICA)은 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어 일을 못하거나 업무에 지장을 받게 되면 줄어드는 수입 보전과 치료비조로 최고 50만파운드(10억원)까지 지원한다. 가족이 사망했을 경우엔 1만1000파운드(2200만원)가 지급되고 그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면 별도의 보상이 이뤄진다. 또 18세 이하의 어린이가 범죄 피해로 부모를 잃었을 경우엔 18세가 될 때까지 매년 2000파운드(400만원)를 지급해 범죄피해자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낙오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

피터 호즈킨슨 웨스트민스터대
교수는 “한국도 최근 범죄피해자 지원 필요성을 느끼고 논의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어 보인다”며 “영국의 빅팀 서포트 같은 한국형 범죄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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