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의 철학이 없는 나라
작년 12월 대구의 중학생이 자살하면서 유서를 남겼다. 같은 반 학생들의 집단폭력과 따돌림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세상을 하직한다고 했다.
그 후 대전의 여고생과 광주의 중학생이, 얼마 전에는 영주의 중학생 이모군이 목숨을 끊었고 뒤따라 안동의 중학생이 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졌다.
중고등학생들의 자살이 무슨 유행병처럼 이어지고 있다. 기막힌 사회현상이다.
정부대책이나 전문가들의 진단 해법은 그동안 많이 쏟아졌으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릇 청소년 문제역시 다른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원인과 동기 과정과 결과가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사회가 문제를 키워주는 모태가 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보면 학교폭력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갑자기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생각컨대 우리사회는 50년대 동족상쟁을 겪으면서 대립갈등이 심해졌고 60년대 빈곤에서 해방되기위해 산업화정책과 새마을 국민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학교공부마저 배워야 산다는 구호를 내세워 전 국민 계몽과 배움을 권장했다.
당시 지방의 농민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식들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굳은 각오로 논 팔고 소 팔고 많은 자녀들을 공부시켰다.
한편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에 나와 산업전선에서 또는 버스차장, 가정부, 식당종업원으로 밤늦도록 열심히 일했다.
필자의 5,6십년 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메마른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남쪽나라 고향에서 의식 걱정 없이 부모형제들과 함께 무난하게 살았지만 어려운 이웃과 전시수준의 사회 환경과 역사적 현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탓에 요즘의 풍족한 사회에 걸맞지 않는 학교폭력을 접하면 가슴이 아프다.
살인적인 경쟁사회가 낳은 학교폭력
학교폭력의 원인과 근본적 처방은 무엇인가?
요즘 수개월째 고민하는 화두의 하나다.
전통적인 대가족사회가 해체되고 핵가족사회가 된지 오래 되었지만 새로운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윤리가 정착되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이다.
예전에는 몇 대가 함께 살아가는 농경사회의 평화와 유교적 원리인 서열문화가 있었지만 산업 정보사회로 발전하면서 모든 가치관이 붕괴했다. 가족전체와 집단 공동체에서 개인과 사회로 중심이 바뀌었다.
개인중심의 사회는 능력사회이면서 동시에 의지할 데 없는 고독한 사회이다.
인류사회의 수천 년 지속되었던 신화 전설 설화에 바탕한 종교 문학 역사마저 현대인에게는 과거의 산물로 비춰질 뿐이다.
현대인들에게는 과거보다는 현재 미래가 존재하고 소중하다. 지금처럼 정보통신문화와 DNA혁명 우주개척시대에 낡은 윤리와 교훈이 먹혀들지 않는다.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어떤 틀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고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수개월 전부터 학교폭력을 다스리기 위해 정부는 경찰을 동원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학교에 실태조사를 했다고 한다.
교육전체의 문제를 개별학교문제로 호도하는 일이며 강압적인 방법역시 일시 효과일 뿐 더 악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군사작전도 아니고 범죄단체 소탕도 아닌데 이 정부는 민간사찰에 이어 학원사찰까지 할 것인지 철학이 빈곤하다.
학교폭력의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실천할 의지와 진정한 교육 행정 지도자가 없을 뿐이다.
1백 년 동안 주입식 서구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전통적 가치관에 입각한 탈 경쟁적인 교육, 일등만이 대접받고 성공하는 사회가 아닌 일등과 꼴등이 함께하는 평등한 인성교육,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교육행정과 스승이 아닌 깨끗하고 사랑이 넘치는 교사들과 학생, 결손가정과 불량학생서클을 강압이 아닌 지혜와 인간애로 선도하는 방안, 학교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신나게 공부하고 우의를 다지며 세상을 학습하는 유익한 공동체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정치적 법률적인 방법이 아니라 민주적 인본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야한다. 소통과 공감의 교육정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독신자가 늘어가는 사회적인 추세에 자녀 한둘뿐인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학교 정부 못지않게 가정의 부모가 책임이 크다.
내 생각으로는 내 자식 공부 1등의 집착을 벗어나야 청소년 교육의 희망이 있다. 내 집이나 내 이웃 자식까지 관련이 있는 일심동체의 마음으로 보살펴야 한다. 이기적인 부모와 배타적인 교육으로는 화를 더욱 키울 것이다.
부모와 학교 사회가 다 같이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대처해야 한다. 어른과 사회가 정직하고 바로 선다면 청소년에게는 엄한 사랑의 매도 약이 될 것이다.
최근 청소년과 어른들의 자살 우울증이 급증하는 것은 사회가 병들고 위기에 처해있다는 경종이다.
그리고 학생인권 못지않게 교사들의 인권도 존중되는 교권이 확립되어야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다. 민주화 바람으로 학생인권은 높아졌으나 교권이 무너진다면 교육이 실패할것은 자명하다.
*필자/윤소암. 시인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