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전부터 고충 털어놓고 자살 高위험군 판정 받았지만 학교는 원인 조사않고 방치 "훈련받은 교사가 맡았어야"
작년 12월 대구 중학생 김모군이 투신한 지 4개월 만에 경부 영주의 중학생 이모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영주 중학생은 1년 이상 만성적으로 폭력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자살 고(高)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대책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군을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최소한 일곱 번은 있었다"고 분석했다.〈표 참조〉
◇문제 발견만 하고 해결은 안 해
이군이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시점은 작년 3월. 이후 1년 이상 폭력이 계속됐지만 학교 측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작년 5월 학교 심리검사에서 이군이 '자살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뒤에도 무엇이 원인인지 끈덕지게 파헤치지 않았다. 사실상 방치한 셈이다.
건국대 박종효 교수는 "언론 보도를 보면 이군은 지속적으로 '위험하다.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아이"라면서 "자살 고위험군은 막연하게 죽고 싶은 단계를 넘어 구체적으로 자살 방법을 생각하는 단계인 만큼, 학교 측이 곧바로 이군을 전담할 교사를 배정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이군은 심리검사 두 달 뒤에야 영주교육청 Wee(위)센터(학교폭력 위기상황에 놓인 학생들을 상담하는 센터)에 갔다. 평택대 차명호 교수는 "자살 고위험군 학생에게는 상담인력 중에서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붙었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상담사가 학교폭력이 의심스러우면 학교와 협의해 곧바로 가해자를 격리시켜야 하지만 그렇게 조치하지 못했다.
이군은 센터가 권하는 대로 한 차례 정신과병원에 갔고, 그 뒤로는 원예 치료만 받았을 뿐이다. 차 교수는 "이군의 상태를 고려할 때 (원예 치료가) 과연 적절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루돌프어린이사회성발달연구소 고윤주 소장은 "뼈가 부러져 다리가 퉁퉁 부었는데, 엑스레이 찍고 부목을 대주는 대신 부기 빠지는 연고를 발라준 격"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학기가 시작됐고, 학교는 한 차례 면담만 했지 사태는 파악하지 못했다.
◇4개월간의 탁상행정
정부는 지난 2월 6일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복수 담임제를 도입하고, 학교폭력신고센터를 만들고, 학교폭력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 발표만 했지, 실행하기 시작한 건 4월 이후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오늘 '이렇게 하자'고 결정해서 내일 실행하면 좋겠지만 국회도 가야 하고 예산도 따야 한다"면서 "솔직히 이 정도도 '빛의 속도'"라고 했다.
대부분의 정책이 위에서 정해 밑으로 내려가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이뤄진 것도 문제다. 평택대 차 교수는 "아이들이 달라져야 학교폭력이 사라지는데, 어른들끼리만 왈가왈부했지 실제로 교실에서 아이들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진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