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14일 새벽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중국인 A(46)씨는 옆에 누워 있는 한국인 남성 B(43)씨를 보며 생각했다. 몇 시간 전 탈북민 출신의 한국 국적 아내가 B씨와 함께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호흡이 가빠졌다. “우린 결혼했어요. 아들은 한국 국적이니까 우리가 잘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자리도 없는데 중국으로 돌아가세요.” A씨는 “아들은 데리고 가겠다. 대신 돈을 달라”며 버텼지만, 아내와 B씨는 이를 거절했다. 모욕감이 밀려왔다.
A씨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길이 20㎝의 부엌칼이 보였다. A씨는 부엌칼을 들고 B씨 배를 한 차례 깊게 찔렀다. 키 154㎝, 몸무게 47㎏으로 왜소한 체격의 A씨는 B씨 가슴 위에 올라탔다. 다른 방에서 자던 아내가 비명을 듣고 달려와 A씨 손목을 비틀어 칼을 뺐었다. A씨는 분이 덜 풀렸는지 주먹으로 B씨 얼굴을 계속 때렸고, B씨는 숨졌다.
A씨는 중국 산둥(山東)성 농부 집에서 태어났다. 4남2녀 중 다섯째다. 부모 모두 병에 시달렸고, 형제가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학용품 살 돈이 없어 기왓장 조작에 글씨를 쓰며 글을 배웠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성적이 너무 안 좋아 포기했다. 키가 작아 군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 사무실 경비 등을 하면서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A씨는 1998년 아내를 만났다. 탈북민 출신인 아내의 빚 160만원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아내는 중국인 호적을 사 혼인할 수 있었다. A씨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며 가끔 폭언도 했지만, 아내를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아내는 중국에 밀입국한 사실이 발각돼 두 차례나 북송됐다가, 다시 북한을 탈출해 A씨를 찾아와 같이 살았다. 아내가 북송됐을 때, A씨는 너무 힘들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아내가 두 번째 돌아왔을 때 아내 배에는 다른 남자의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키웠다. 퇴근 후에는 곧바로 집에 와 아들을 돌봤다.
아내는 2012년 탈북자 신분으로 국내에 입국해 한국 국적을 얻고 이름도 바꿨다. 아내는 2013년 아들을 국내로 입국시키기 위해 A씨와 혼인신고까지 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때부터 B씨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고 있었다.
A씨는 2014년 5월 아내 연락을 받고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B씨를 소개했다. A씨는 별 의심 없이 용인에 있는 아내 집에서 아내와 아들, B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A씨는 한국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3개월 정도 B씨를 따라다니며 일을 하기도 했다. 컨테이너 제작업체에도 취직했다. 하지만 일이 힘들고 의사소통도 잘 안 돼 그만두고 지난해 9월 6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A씨는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미리 연락하지 않고 아내 집을 찾았다. A씨는 B씨가 아내,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A씨에게 관계를 털어놓고 아들까지 자신들이 키우겠다고 했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절망감에 빠진 A씨는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검찰은 A씨를 살인 혐
의로 구속 기소했고, 1심은 “자신과 아들을 중국에 남겨둔 채 떠나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아내가 다른 사람과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B씨에게서 아내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자 흥분해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최근 대법원은 징역 15년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