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학교폭력의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교폭력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에도 오늘에서야 언론은 언론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저 나름의 문제와 대책을 쏟아 내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아마 이른 경우를 두고 우리는 '사후약방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물론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서 또 소를 잃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한 후에도 약방문을 두드리지 않아서 다른 가족이 화를 입게 되는 것보다야 당연히 필요한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잘못된 처방을 하거나 엉뚱한 곳을 고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떠한 문제나 질병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이 척결되고 해결되고 해소돼야 한다.
우선 학교폭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대책은 학교폭력을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몰고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사법당국에서도 주로 가해학생의 문제로만 치부해 교육당국에서는 가해학생에 대해서 학생부 등에 기록하여 입학사정 등의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하고 사법당국에서도 가해학생들에 대한 강력한 사법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대책들은 잘못된 진단에 근거한 잘못된 처방전일 수 있다. 그와 같은 가해학생들에 대한 엄중한 대응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만 가해 사회적 낙오자로서 범죄적 인생 또는 직업적 범죄자의 길로 내몰 수 있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배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우리 사회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전과자만 양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대책만 나오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원인의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해학생도 피해학생도 우리 사회가 보호하고 육성해야할 대상이지 그 누구도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행 청소년들도 사실은 비난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보호 육성하지 못한 그래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피해자학에서는 이를 가해자비난(Offender blame)도 아니요 피해자비난(Victim blame)도 아닌 체제나 제도비난(System blame)이라고 한다. 이는 학교폭력도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제도와 체제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고 비난의 대상도 바로 그 체제와 제도라는 것이다. 이것이 학교폭력을 개인적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폭력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청소년들의 비행과 일탈을 많은 전문가가 청소년들의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사회화(Socialization)로 인한 사회부적응(Social maladjustment)의 증상으로 보고 있다. 학교폭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청소년들의 사회화는 바로 가정이 그 일차적 사회화기관(Primary Socialization Agent)이요 학교와 사회가 2차, 3차 사회화기관이다. 따라서 우선은 가정에서,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학교가,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우리 사회 전체가 나서서 청소년들을 제대로 사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문제는 가해학생만을 탓할 것이 아니며 피해학생 또한 혼자만의 고민과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정, 학교, 사회가 바로 서고 각자의 몫을 다하는 것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우선과제요 첩경이지, 결코 가해학생을 비난하는 것은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잘못된 진단이요 잘못된 처방으로 인해 더 많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크다. 그렇다고 물론 가해학생들을 무조건 용서하고 보호만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일깨워주고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일의 우위와 순서를 가리자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만들어낸 사회와 그 체제나 제도가 먼저이고 더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