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비밀번호찾기 | 회원가입
  공지사항
  언론보도
  포토갤러리
  규정ㆍ양식
  홍보게시판
고객지원센터 > 언론보도

성폭력,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마음을 살피는 것
조회 : 42,867
2012.03.17 13:27

성폭력,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마음을 살피는 것

일본 여성계 동향-WAN으로 부터의 발신 2011/03/17 14:11 이프

-오사카의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 활동가 인터뷰

                                                         

WAN : 이번 ‘돌격! 이웃집 페미니즘’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의 스도우 유미코 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의 설립 경위를 말씀주시겠습니까?



스도우 유미코 : 1988년 지하철 미도스지선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하철 미도스지선은 치한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한 여성(이하 A씨라고 칭하겠습니다)이 이전에 자신을 성추행했던 두 명의 남성이 또 다른 여성을 성추행 하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치한들에게 주의를 주고 피해자를 도망치게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치한이 A씨를 붙잡아(정확히 말하면 A씨는 도망쳤지만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기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린 후 선로 공사 중인 빌딩 안으로 끌고 들어가 강간한 사건입니다.



지하철 성폭력 사건 이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



WAN : 무서운 이야기군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역무원이 보지 못했을까요?



스도우 유미코 : 개찰구를 나올 때 A씨가 무서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치한에게 ‘NO!’라고 반박한 여성에 대한 보복으로 버젓이 강간이 자행될 수 있다면 치한에게 주의를 줄 수도 없고 ‘그만둬!’라고 할 수 없게 돼버려요. ‘이건 큰일이야’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모여 먼저 오사카시 교통국과 지하철회사에 치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고 동시에 성폭력에 대한 ‘NO!’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집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이듬해에는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 씨를 초청해 500명이 입장 가능한 아사히 생명 홀에서 집회를 한 결과 만석이었어요. 당시에도 여성운동과 관련된 집회에 500명이 모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집회에는 하이힐을 신은 퇴근길의 여성들이 달려왔습니다. 여성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지요.

또한 당시 집회가 있다는 것을 신문에 게재했는데 그것을 보고 연락처를 통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당시 도쿄에는 성폭력 구호 센터가 있었지만 오사카에는 성폭력에 관한 상담을 받는 곳이 아직 없었거든요.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여성들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500명 규모의 집회가 성공하고 다소 수익이 있었기에 전화를 들여 놓고 계속해서 상담을 받기로 하고 활동을 시작한 것이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이 탄생한 경위입니다.



WAN :그렇다면 위원회 설립 당시부터 성폭력 피해자의 상담을 받는 것이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의 기본 활동이었군요. 이 모임의 임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스도우 유미코 : 상담 활동과 공개강좌 등을 통해 사회에 성폭력 문제를 호소하는 것과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는 것, 이 두 가지가 활동의 기둥입니다.

초기엔 다른 성폭력 상담 창구가 없어서 시작된 상담이기에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상담을 해야 하는지 몰라 공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도쿄 성폭력 구호 센터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법률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변호사를 초빙해 학습하고, 상담하는데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가를 공부하면서 상담해 왔습니다.

공부한 성과는 기관지 《파이트 백》에 보고하고 또 ‘서바이벌 핸드북’으로 발행하는 《단념하지 않는 여성의 핸드북》으로 정리하고 있고요. 상담 전화를 받을 때 반드시 명심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나쁘지 않다”는 말을 가장 먼저 전하는 일입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WAN : 상담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사람은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가 보죠?



스도우 유미코 : 피해자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어도 아무래도 그런 마음을 갖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전하고 싶은 겁니다.

동시에 상담을 진행하는 우리도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노력해요. 상담은 2인 1조로 진행됩니다. 상담을 혼자서 진행하게 되면 문제를 혼자서 떠안게 돼 지쳐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전화 상담은 매주 화요일 저녁 7~9시라는 시간제한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많은 상담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시작 초기에는 다른 상담 창구가 전혀 없었지만, 점차 여성에 대한 폭력 상담은 여성센터 혹은 DV(데이트폭력) 상담창구에서 가능하게 됐기 때문에 상담 건수가 줄었다고 생각해요. 여러 곳에서 상담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상담 건수가 줄어든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WAN :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은 재판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도우 유미코 : 모임이 생기기 전에도 회원 중 몇몇은 성폭력 피해자의 재판을 지원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재판에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교토대학 야노사건’입니다. ‘교토대학 야노사건’이나 ‘요코야마 노크사건’, ‘미즈호 감금 사건’ 등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재판의 피해자를 지원했습니다.



WAN : 재판에서 피해자 지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스도우 유미코 : 큰 재판에는 변호사가 여럿이라 변호인단 회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변호사와 피해자가 변호정책전략에 대해 의논하는 모임을 말하는데요, 그 자리에 함께해서 변호정책에 피해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지원합니다. 또한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변호사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피해자에게 그 의미와 법적 제약 등을 설명하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변호사와 피해자 사이의 통역 업무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피해자와 변호사 사이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변호인단 회의 전에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재판을 진행시켜 나가고 싶은지 등을 고려해 피해자와 함께 정책을 생각합니다. 또 재판에 대해 지원을 호소하는 기관지를 만들기도 하고요.



피해자가 회복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



WAN : 재판에서 피해자 지원에서 주의하고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스도우 유미코 : 기본적인 자세는 피해자 본인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변호사라면 결코 말하지 않을 “그만하고 싶다면 멈춰도 됩니다”라는 말을 우리는 합니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강력히 주장하지만, 우리는 “피해자인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가가 중요합니다”라는 자세로 참여합니다.

재판에는 이겼지만 피해자가 방치돼 ‘차라리 재판하지 말걸 그랬다’라고 생각한다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죠. 때때로 재판을 지원하면서 주위의 지원자가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피해자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 지원을 하고 싶어요. 피해자가 회복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WAN : 정말로 피해자의 회복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데도 방치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도우 유미코 :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의 모임’은 요청을 받은 여성들에 대한 자원 봉사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재판 지원 요청이 와도 모두 지원 할 수가 없습니다. 꽤 거절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WAN : 모임이 발족한지 이미 20 년 이상 됐는데 그동안 변화한 것이 있습니까?



스도우 유미코: 학습 모임을 계속 진행하며 활동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것이 일로 연결된 사람도 많습니다.



WAN : 스도우 유미코씨 자신도 피해자 지원 일을 하며 페미니스트 카운슬러로 직업을 바꾸셨더군요.



스도우 유미코 : 저 말고도 카운슬러가 된 사람도 있고, 대학과 정부의 성희롱 전문 상담원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지원 활동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제가 카운슬러가 된 이유는 상담과 재판 지원만으로는 회복이 어려운 피해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복에는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데 당시는 페미니스트 카운슬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운슬러가 된 거죠.

우리는 월 2회 회의, 매주 1회 전화상담, 3개월에 1회 공개강좌, 3개월에 1회 기관지 발행을 하고 있답니다. 계속해서 공개강좌와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모임에서 발생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2010년에 20주년 기념 이벤트로 《성폭력 금지법을 만들자》는 보고집을 만들었는데 ‘성폭력 금지법을 만들자 네트워크’의 회원도 “이것이 제일 알기 쉽게 쓰여 있다”고 말하더군요. 기관지 《파이트 백》에도 질 높은 기사가 게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금지법을 만들자 성폭력을 용납 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20주년 이벤트 보고문집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20년 이상 이어온 활동 



WAN : 그렇습니다. 《파이트 백》기사를 때때로 WAN에 게재하고 있는데 공부가 되는 기사가 많더군요. 20여 년간의 공부의 산물이군요.



스도우 유미코 : 20여년 사이에 네트워크도 넓어졌지요. 핵심 멤버들은 각자 활동도 하고 있고, 스터디 그룹을 통해 변호사 및 다른 운동 단체와도 네트워크가 확산됐습니다. 지난해 시작된 SACHICO에도 네트워크로 참여하고 있고요.



WAN : 앞으로 위원회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으신지요, 어떤 전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스도우 유미코 : 전망이라…. 그런 것은 별로 없어요. 20여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기본자세로 해왔습니다. 그것이 지속 가능했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힘든 일이 있어도 직원 모두 온천에 갈 계획을 세우고 ‘온천에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하자’라는 식으로 이어오고 있어요.

20여 년간 핵심 멤버는 바뀌지 않았지만 새롭게 젊은 친구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멤버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계속 해주길 바라’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우리는 여러 활동을 하면서 “참 잘했어”라고 서로를 칭찬하며 꾸준히 활동해왔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어왔기에 계속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WAN : 지원을 받았던 사람이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나요?



스도우 유미코 : 재판에서 지원했던 당사자와는 재판이 끝나고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는 느낌으로 교제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받았으니 그 경험을 살리길 바란다거나 잊지 말아달라고 하지 않아요. 재판이 끝나면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원을 요청했으니 모금에 동참해야 한다든가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죠.

그런 의미에서 기존 운동 단체와는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모임이 지속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계속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인 거죠.



WAN : 그러면서 20년을 이어오셨네요. 성폭력관계 중요 재판도 지원해 오신 거고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교토대학 야노 사건이란?



‘교토대·야노 사건’은 1993년에 발각된, 교토 대학 교수·동남아시아 연구센터 소장 야노 토오루가 연구소 비상근 여성직원들을 성희롱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일본 대학에서의 첫 성희롱 사건으로서 화제가 되었다.



1993년 1월 12일, 야노 토오루 교수는, 같은 센터 직원의 여동생을 비서로 채용하고는 이 여성을 교토 한 호텔의 지하 바로 이끌어, “내가 이렇게 지쳤을 때는, 너는 ‘교수님, 오늘 함께 한잔 하러 가실래요?’라든지 ‘선생님, 오늘은 제가 곁에 있어드릴게요.’라는 식의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서의 역할이야!”라고 요구했다.

여성이 “저는 애인이 있기 때문에 안돼요.”라고 거절하자, 야노는 화를 내며, “능력도 없고, 특출한 미인도 아닌데 고용해 주려고 했더니 네가 거절을 해?” “남자가 있는 여동생을 소개한 네 언니도 언니다.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소장이니까 센터를 그만두게 하는 일쯤은 간단해!”(1995년 판결문)라고 발언했다. 이것이 학내에서 문제가 되어 야노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각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도 야노의 성희롱은 그치는 일 없이 이어졌다. 1993년 4월에 비서로 채용된 다른 여성이 그의 도쿄 출장에 동행했을 당시 숙박지인 테이코쿠 호텔의 방에서 갑자기 비서를 끌어안고 다리를 감아 넘어뜨린 후 옷을 벗기려 하는 성적 폭행을 했다.

또 다른 비서를 교토 그랜드 호텔의 엘리베이터에서 끌어안고는 방에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 비서는 ‘나는 야노 교수의 애인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사표를 보냈다. 같은 해 4월부터 6월에 걸쳐서 야노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며 사직한 비서는 모두  7명에 달한다.



이 사건에 대해 여성 직원들이 ‘사건 진위의 규명과 단호한 처치를 요구한다’라는 질의장을 사무국에 제출하고 센터가 ‘근무 환경 조사 개선 위원회’를 결성해 대책에 나서자, 야노는 “연구에 전념하고 싶다” 며 센터를 사임했다.



그러나 1993년 12월, 전 비서 중 한 명이 야노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변호사회에 제기해 인권 구제를 요구했다. 그 호소의 내용은 이러하다.

전 비서는 야노가 다른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학생인데, 야노의 저서에 감명을 받아 야노를 만났다. 그런데 호텔 라운지에서 야노는 “오늘은 피곤하니까 방에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며 방에 그녀를 데리고 가서 얼굴을 구타하며 억지로 성폭행했다.

그 후, 이 여성은 야노의 권유로 센터의 비서가 되었고 야노가 “성행위는 대등한 인간끼리 하는 것이며, 자네와 내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동남아시아 연구를 목표로 하는 동지적 연대의 증거다”(1995년 판결문)이라고 설득하여 6년간, 결혼 후에도 야노의 애인으로 관계를 계속 가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스캔들로 매스컴에 보도되어 1993년 12월 20일, ‘일신상의 이유’에 의해 교토 대학 교수를 사임하게 된다. 다음날부터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의 임제종 토우후쿠사에서 재가 수행자가 되었다. 원래는 1년~ 3년의 수행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페미니스트 단체의 항의에 의해 40일이 지나자 절에서 추방되었다.

야노는 비서와 성적 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상호 책임에 근거하는 화간을 주장했다. 1994년, 교토대에 복직이나 명예 훼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교토 지방 법원에 3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자신은 한번도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1997년에 모두 패소가 결정되었다. 1996년에는 홀로 빈에 건너가 빈 대학 객원 교수(무급)가 되었지만, 일본에 귀국하지 않은 채로 1999년 빈에서 객사했다.




                                                                                                                        -이승주




 
자격관리위원회소개 ㅣ 주요업무 ㅣ 조직도ㅣ 연혁 ㅣ 오시는길ㅣ 개인정보취급방침 ㅣ이용약관
(04969)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78길 75, 513호 (광장동,현대골든텔2오피스텔)
Tel  02-3437-8700   FAX  02-3436-1704
 copyright (c) edukova.org all rights reserved e-mail : [email protected]